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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무기력 (통제감, 코르티솔, 뇌 변화)

by skyshadow5 2026. 2. 24.

무기력은 정말로 '학습'되는 걸까요? 저는 블로그 초기에 두 달간 매일 글을 올렸는데도 방문자가 20명을 넘지 못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처음엔 버텼지만 석 달째 되자 노트북을 열어도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게 되더군요. 게으른 건가 싶었는데, 최근 연구를 보니 이건 게으름이 아니라 뇌가 '내 행동이 결과를 바꿀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나타나는 생물학적 반응이었습니다. 스트레스가 뇌 구조를 실제로 바꾼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변화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제 경험과 함께 정리했습니다.

통제감을 잃으면 뇌가 멈춘다

1967년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실험은 충격적입니다. 전기 충격을 받는 두 그룹의 동물을 준비했는데, 한 그룹은 레버를 눌러 충격을 멈출 수 있었고 다른 그룹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강도의 충격을 받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통제권이 없었던 그룹은 나중에 도피가 쉬운 환경에 놓여도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무기력 상태를 보였죠.

이 현상의 핵심은 뇌간의 배측 봉선핵과 전전두엽 사이의 상호작용입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간은 세로토닌을 분비해 불안 반응을 일으키는데,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전전두엽이 이 반응을 억제합니다. 반대로 통제 불가능하다고 느끼면 전전두엽의 개입이 사라지고 무기력 상태가 고착되는 겁니다.

저는 블로그 조회수라는 제가 직접 통제할 수 없는 목표에 집착하면서 이 무기력 상태에 빠졌습니다. 전환점은 목표를 바꾼 순간이었습니다. 조회수 대신 '오늘 한 편 완성'이라는 제가 온전히 통제 가능한 기준으로 옮기니 다시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통제감 회복이 무기력을 깨뜨리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뇌 구조를 바꾼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 즉 HPA 축이 작동합니다. 시상하부에서 신호가 시작되어 뇌하수체를 거쳐 부신에서 코르티솔이 분비되죠. 단기적으로는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동원하는 유용한 반응입니다. 문제는 이 상태가 만성화될 때입니다.

만성 스트레스는 뇌의 세 영역을 정반대 방향으로 변화시킵니다. 먼저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코르티솔에 극도로 민감합니다. 코르티솔이 지속적으로 높으면 해마 신경세포의 가지가 줄어들고 새로운 신경세포 생성이 억제됩니다. 실제로 해마 부피가 감소하면서 기억력과 학습 능력이 떨어집니다.

반대로 공포와 불안을 처리하는 편도체는 스트레스 하에서 오히려 커집니다. 신경 가지가 늘어나고 연결이 강화되면서 사소한 자극도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죠. 저는 첫 전자책을 출간했을 때 긍정적인 리뷰 열 개보다 비판적인 리뷰 한 개가 머릿속을 지배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댓글 하나를 읽고 나서 심장이 빨라지고 잠을 못 이루는 상태가 며칠 지속됐는데, 이게 정확히 편도체가 과활성화된 상태였던 겁니다.

의사결정과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은 만성 스트레스 하에서 연결성이 약화됩니다. 논리적 판단보다 습관적 반응에 의존하게 되고,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집니다. 스트레스받을 때 머리가 하얘지고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험, 누구나 있으시죠? 그게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전전두엽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된 상태입니다.

코르티솔은 면역까지 무너뜨린다

스트레스의 영향은 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심리학자 쉘던 코헨은 참가자들에게 의도적으로 감기 바이러스를 노출시키는 실험을 했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감기에 걸릴 확률과 증상 강도가 유의미하게 높았죠.

이유는 만성 스트레스가 코르티솔 수용체의 민감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코르티솔은 원래 염증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수용체가 둔해지면 신체가 염증 반응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감염에 취약해지고 만성 염증 상태가 유지됩니다.

저는 아이가 30개월쯤 되었을 때 한 달간 감기를 세 번 걸렸습니다. 그 시기가 가장 스트레스가 심했던 때였는데, 밤중 수유와 야간 깨움으로 수면이 하루 네다섯 시간으로 줄고 블로그 마감에 쫓기면서 식사도 불규칙했습니다. 병원에서 면역력 저하를 진단받았을 때 이 연구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수면 시간을 최소 여섯 시간으로 사수하겠다는 원칙을 세웠고, 블로그 포스팅 횟수를 줄이더라도 잠을 우선순위에 뒀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스트레스가 세포 수준에서 노화를 가속화한다는 사실입니다. 노벨상 수상자 엘리자베스 블랙번의 연구에 따르면 만성 질환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들의 텔로미어 길이가 유의미하게 짧았습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단의 보호막인데, 이게 짧아지면 생물학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최대 10년까지 늙을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단순히 피곤한 게 아니라 세포를 실제로 늙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스트레스를 완전히 없앨 순 없습니다. 하지만 통제 가능한 부분에 집중하고, 수면과 루틴을 지키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뇌와 몸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저는 디지털 알림을 모두 끄고 글쓰기 시간에 휴대폰을 다른 방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틀은 불안했지만 사흘째부터 같은 글을 절반 시간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뇌가 경계 모드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깊은 사고가 가능해졌던 겁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를 이해하고 환경을 바꾸는 문제입니다.


참고: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557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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