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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심리학의 행복 (쾌락 적응, 자기결정성, PERMA)

by skyshadow5 2026. 2. 23.

새 노트북을 샀을 때의 기쁨이 한 달도 못 가서 사라지고, 오히려 더 좋은 모니터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작년에 이 경험을 하면서 행복이라는 감정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물건을 사거나 목표를 달성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제 경험상 그 행복은 놀라울 만큼 짧았고 금방 새로운 욕구로 대체됐습니다. 현대 심리학은 이런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행복을 단순한 기분이 아닌 다차원적인 구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쾌락 적응과 행복의 두 얼굴

현대 심리학에서 행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쾌락적 안녕감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고통을 피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실현적 안녕감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과정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행복하면 기분 좋은 상태만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돼야 진정으로 번영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노트북을 샀을 때 느낀 것이 바로 쾌락적 행복이었습니다. 개봉하던 순간의 설렘, 새 제품 특유의 만족감은 분명 강렬했지만 한 달이 지나자 완전히 무뎌졌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쾌락 적응이라고 부르는데, 인간의 뇌가 새로운 자극에 빠르게 익숙해지도록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한 번의 성공으로 영원히 만족했다면 우리 조상들은 더 이상 사냥이나 번식을 하지 않았을 테고, 그건 곧 종의 멸종을 의미했을 겁니다.

반면 블로그 독자가 "이 글 덕분에 육아가 수월해졌어요"라고 댓글을 남겼을 때 느낀 충만함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 감정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지는데, 이게 바로 자기실현적 행복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의미, 제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 자체가 깊은 만족감을 줬고, 조회수 몇만 회보다 훨씬 오래 지속됐습니다. 심리학자 에드 디너는 이런 주관적 안녕감을 긍정적 정서의 빈도, 부정적 정서의 감소, 삶의 만족도라는 세 가지 요소로 측정하는데, 물건을 사는 행복은 첫 번째 요소만 잠깐 건드리지만 의미 있는 행동은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 같습니다.

자기결정성 이론과 행복의 역설

마틴 셀리그만이 제시한 PERMA 모델은 행복을 다섯 가지 기둥으로 설명합니다. 긍정적 정서, 몰입, 관계, 의미, 성취가 그것인데, 솔직히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는 너무 복잡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을 대입해 보니 딱 들어맞았습니다. 글을 쓸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순간(몰입), 독자와 소통하며 느끼는 연결감(관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보람(의미), 목표 조회수를 달성했을 때의 뿌듯함(성취)까지, 이 다섯 가지가 골고루 채워질 때 진짜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행복을 너무 강박적으로 쫓으면 오히려 불행해진다는 역설도 경험했습니다. 한때 SNS에서 유행하던 긍정 확언을 매일 반복했는데, 육아에 지치고 블로그 성과가 안 나올 때 "행복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우울하지"라는 자괴감이 더 컸습니다. 일반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기분이 나아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행복하지 않은 감정을 억지로 부정하니 이중 고통만 생겼습니다.

수용전념치료(ACT)에서는 불편한 감정을 없애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가치에 맞는 행동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내가 지쳐 있구나"라고 그냥 인정하기 시작했고, 역설적으로 그때부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자기결정성 이론에서 말하는 자율성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한동안 매일 2포스팅이라는 규칙을 스스로에게 강제했는데, 좋아서 시작한 일이 의무로 변하면서 즐거움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자율성을 잃으니 내재적 동기도 함께 무너지더군요. 기준을 "쓰고 싶을 때 쓰되 주 5회"로 느슨하게 바꾸자 오히려 글의 질이 올라가고 다시 재미가 돌아왔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체면 문화가 행복에 독특한 영향을 미칩니다. 동기들이 대기업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집을 살 때, 블로그로 1인 크리에이터의 길을 걷는 저는 명절 때마다 제 선택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끊임없는 사회적 비교와 타인의 시선이 불안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럴 때 가장 도움이 된 건 6개월 전의 저와 비교하는 것이었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이지만, 과거의 제 모습과 비교하면 분명히 성장해 있었으니까요.

류보머스키의 행복 파이 차트는 행복의 50%가 유전, 10%가 환경, 40%가 의도적 활동이라고 설명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유전의 영향이 70~80%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수정됐습니다. "결국 유전이 다 정하는 거 아냐?"라는 무력감이 들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유전적 범위 안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도 타고난 성격이 걱정이 많은 편이지만, 감사 일기를 쓰고 소소한 즐거움을 의도적으로 음미하면서 확실히 긍정적 정서의 빈도가 늘어났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제 안녕감의 상한선을 조금씩 높일 수는 있었습니다.

행복은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조건을 수용하면서도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쾌락적 행복은 빠르게 사라지지만 의미와 관계에서 오는 행복은 오래 남고, 행복을 강박적으로 쫓을수록 불행해지는 역설을 이해하면 조금 더 현실적인 기대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새 물건을 살 때 "이 기쁨은 한 달이면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짧은 즐거움을 충분히 음미하려 합니다. 동시에 독자와의 소통, 가족과의 시간처럼 의미 있는 순간들을 더 자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완벽한 행복은 없지만, 두 가지 행복의 균형을 맞춰 가는 과정 자체가 제게는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참고: https://positivepsychology.com/hedonic-vs-eudaimonic-well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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